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부석사원융국사비(浮石寺圓融國師碑)
- 등록일
- 2015.07.13
- 작성자
- 관리자
분류 | 금석문/ 고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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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1054년(문종 8) |
수량/재질 | 1기/ 돌 |
크기 | 전체높이 260㎝, 비신 167×110×15㎝ |
찬자 | 고청(高聽) |
지정현황 | 경북유형문화재 제127호 |
고려 전기의 화엄종 고승 원융국사 결응(圓融國師 決凝, 964~1053)의 비석으로, 국사가 입적한 이듬해인 1054년(문종 8)에 세웠다. 비신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갈라진 틈이 넓게 있고, 오른쪽 윗부분과 왼쪽 아래 부분이 많이 파손되었다. 원융국사는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12세에 용흥사(龍興寺)에서 출가하여 복흥사(福興寺)에서 수계하고, 28세에 대덕이 되었다. 덕종이 묘지사(妙智寺)를 헌납하여 주석하게 하였으며, 정종은 왕사(王師)로 책봉하고, 문종은 국사(國師)로 책봉하였다. 정종 때는 기우제를 주관하기도 하였으며, 1041년부터 부석사에 머무르다가 1053년 입적하시니 세수 90세요, 법랍 78세였다. 문인은 수좌 1인, 삼중대사 5인, 대사 1438인 등으로 많았다. 비문의 내용 중 특기할 만한 것은 무량수전의 불상 배치가 중국 화엄종의 대종사인 지엄(智儼)의 종지(宗旨)를 이어받은 의상 창건 당시의 구도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맨 끝부분에는 수비원(守碑院)이라 하여 비를 수호하는 건물을 두고 3인의 문도가 지키도록 하였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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