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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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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종찰략사(佛宗刹略史)1900년대 전기 통도사의 사적을 살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록이다. 내용의 상당 부분이 기문 현판과 중복되는 곳이 있으나, 사리계단 및 당우의 창건과 중건, 중수사실 등을 상세히 적고 있는 종합적인 자료이다. 가사이적(袈裟異蹟)과 함께 금와설화(金蛙說話), 사지정계(寺址定界), 괘불 보수, 조선시대 통도사의 제역혁파(諸役革罷) 사실, 그리고 여러 전각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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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舍利浮圖碑)통도사 사리탑의 내력을 기록한 비문이다.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임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금강산에 옮겼다가 서산대사의 뜻에 따라 다시 통도사에 봉안하였음을 밝혔다. 중수한 계단은 5단에 가로 세로 100무(畝)이고, 구리기와를 얹은 2층 전각임도 밝혔다. 후면 비문은 성능(性能)이 짓고 보윤(普允)이 썼다. 석가모니의 생애와 중국 현장법사의 구법과 사리 전래, 자장율사의 문수보살 친견 등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통도사의 사리 봉안과 순치 연간(1644~1661)의 중수, 1705년의 비 건립 내력 등을 서술하고 관련 인사와 지원 사찰을 열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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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사적약록(通度寺事蹟略錄)이 사적기는 한때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으로 오인되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이 책을 구성하는 첫 장의 제목이고, 이 책의 정식 명칭은 ‘통도사사적약록(通度寺事蹟略錄)’이다.본문은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 사리영이(舍利靈異), 가사희기(袈裟稀奇), 사지사방산천비보(寺之四方山川裨補), 서천지공화상위사리가사계단법회기(西天指空和尙爲舍利袈裟戒壇法會記), 통도사창조자장행적(通度寺創祖慈藏行蹟) 등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래 통도사의 사적이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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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大興寺 北彌勒庵 磨崖如來坐像) 바위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 있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으로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본존불의 육계(肉髻)가 뚜렷한 머리는 언뜻 머리칼이 없는 민머리(素髮)처럼 보이나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단정한 얼굴은 살이 찌고 둥글넓적하여 원만한 상이다. 그러나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입을 굳게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귀는 큼직하니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유난히도 굵고 짧아진 목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삼도(三道)를 나타내었다.손(手印)과 발은 항마촉지인에 오른 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냘픈 듯 섬세하고 가지런히 묘사하여 사실성이 엿보임과 더불어 곱상한 느낌을 준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그 주름은 거의 등간격으로 선각화(線刻化) 하여 사실성이 뒤떨어지고,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마치 키를 드리운 것처럼 늘어지는 등 도식적(圖式的)인 면이 강하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시대로 이행해 가는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대좌(臺座)는 11엽의 앙련(仰蓮)과 12엽의 복련(覆蓮)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대좌로 두툼하게 조각되어 살집 있는 불신(佛身)과 더불어 부피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다른 예에서와는 달리 자방이 높게 솟아올라 있어 특징적이다. 머리 광배(頭光)와 몸 광배(身光)는 세 가닥의 선을 두른 3중원(三重圓)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火焰紋)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위·아래로 대칭되게 4구의 천인상을 배치하였다.둔중한 체구로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본존불과 달리 경주 석굴암 내부 감실(龕室)의 보살상을 연상케도 하는 4구의 천인상은 날렵한 모습으로 부드러움과 함께 세련미가 엿보인다. 천인상들의 조각표현은 이 당시의 거의 유일한 예이자 우수한 조형미를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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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서산대사유물 (大興寺 西山大師遺物)해남 대흥사에 있는 서산대사의 유물로, 임진왜란때 승군(僧軍)으로 나선 서산대사를 승군 대장 도총섭(都總攝)으로 임명한 교지와 정조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을 친히 적은 서산대사화상당명 총 2점이다.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을 받아 팔도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노령으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군 1,500명을 모아 활약하는 등 전쟁에 공을 세웠다.교지는 임진왜란 초 발급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된 서산대사의 도총섭 교지를 만력 30년, 즉 선조 35년(1602)에 재발급한 것이다.서산대사화상당명은 정조 18년(1794)에 해남 대흥사에 서산대사의 영정이 모셔지는 것을 계기로 정조가 친히 지은 서산대사화상당명과 그 서문을 써서 대흥사에 내려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꽃, 구름무늬 채화가 그려진 담황색 비단에 내용이 적혀있고, 끝부분에는 정조의 친필임을 상징하는 홍재(弘齋)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글의 내용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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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탑산사명 동종 (塔山寺銘 銅鍾)고려 시대 만들어진 높이 79㎝, 입지름 43㎝의 종으로 신라 형식을 계승한 전통적인 모습에 고려후기에 새로 나타난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종 꼭대기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고, 매다는 곳인 용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부분에는 연꽃으로 띠를 둘렀고, 그 아래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사각형의 연곽(蓮廓) 안에는 가운데가 돌출된 연꽃을 9개 두었는데, 신라 때의 연꽃봉우리보다 훨씬 납작해져 도안화된 모습이다.종의 몸체에는 삼존상을 장식하였고, 그 아래쪽에 새겨진 종의 제작시기는 고려 명종 3년(1173)이나 고려 고종 20년(1223)으로 추정된다.전체 형태는 상원사 동종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선을 갖고 있으며, 용뉴와 문양의 세부가 뛰어난 고려시대 범종 중에서도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걸작이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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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화엄산림법회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인 39품 80권의 화엄경을 강설함으로써 그 인연공덕으로 국태민안 법륜상전 업장소멸 소원성취를 추구하는 법회를 화엄산림이라고 하는데, 화엄경은 경전의 양이 방대하므로 삼칠일 삼십일 칠칠일 등의 기간에 주로 봉행된다. 영축총림 통도사 화엄산림은 동안거 기간에 30일 동안 31명의 고승이 날마다 오전과 오후에 법문을 하고 매일 관음시식으로 동참 영가와 무주고혼을 위한 관음시식을 베풀고 매주 토요일 법성게의식으로 영가의 왕생을 돕는 형태로 진행된다. 통도사에서는 동안거 중인 음력 11월 한 달 동안 매일 법사스님을 모시고『화엄경(華嚴經)』의 각 품을 강설하는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를 열고 있다. 화엄산림법회의 역사적 뿌리는 신라시대에 수많은 불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백 명의 고승들이 연이어 법문을 하는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매일 수천 명의 불자가 운집하여 장엄한 정진의 법석을 이루면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대중법회로 회자되고 있다. 아울러 법회 기간 동안 일주일마다 법성게(法性偈)라 일컫는 영가천도기도를 함께 올려 산자와 망자를 위한 법석을 함께 펼침으로써 통도사만의 독자적인 화엄산림법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화엄산림 법회는 1925년에 경봉(鏡峰) 스님이 양로만일염불회(養老萬一念佛會)를 조직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화엄경』설법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겨울, 도반 몇 사람과 다시 ‘화엄산림’이라는 이름으로 보름간 설법을 하였는데, 이것이 화엄법회의 시작이다. 농사가 주업인 당시 불자들에게 겨우내 농한기를 틈타 사찰에서 먹고 자면서 기도하고 부처님 말씀까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이처럼 1920년대부터 시작한 화엄산림이 본사로 내려와서 동짓달 한달간 화엄전(華嚴殿)에서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82년 홍법(弘法:1930〜1978) 큰스님이 화엄산림에서 법문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70년대 초부터 본사에서 법회를 연 것으로 보인다. 이후 비좁았던 화엄전에서 400평의 넓은 법당인 설법전이 1994년에 완공되면서 1만명 이상이 동시에 법문을 들을 수 있는 대법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현재와 같이 매년 동짓달 한 달간 법회를 열면서 통도사의 대표하는 법석으로 정착되었다. 화엄산림 기간에는 매일 오전ㆍ오후 두 차례씩 화엄경의 각 품을 주제로 제방 대덕 스님들이 설법을 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한 달간 열리던 화엄법회를 53일로 늘리고 법사스님들도 53인을 모셔, 실제『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등장하는 53인의 선지식을 상징하는 법석을 열었다가, 이후 다시 한 달로 정착되었다. 아울러 초기에는 산 자들을 위한 법문 중심으로 법회를 열었으나 영가 또한 화엄법문에 동참하도록 하여, 영가를 함께 모시고 있다. 법회기간에는 오전법문을 하기 전에 먼저 사시불공을 올리고, 법문 뒤에는 영가를 위해 금강경 독송과 관음시식을 행하며, 오후법문을 하기 전에 30분 정도 『화엄경』「약찬게(略纂偈)」독송이 이어진다. 2015년의 화엄산림법회에도 동참인원이 만 명을 넘었고, 위패를 모신 영가는 10만위 이상이었다. 마지막 회향법회는 9시 30분부터 설법전에서 시작되었다. 노전스님의 집전에 따라 천수경 염송으로 도량을 결계하고 정화한 다음, 상단권공과 상단축원을 올리고, 반야심경을 염송하는 사시불공을 올렸다. 삼귀의에 이어 10시 30분경 주지스님이『화엄경』의 마지막「입법계품」과 화엄산림법회를 회향하는 법문이 시작되었다. 법문이 끝나자 석가모니불 3창과 사홍서원 염송으로 1부를 마쳤다. 11시 10분경 영단을 향한 시식이 이어졌다. 화엄산림기간 중의 시식은 노전스님의 집전 아래 관음시식으로 베풀어졌고, 회향 때는 주지스님이 화엄시식으로 집전하였다. 이어 11시 50분경 봉송이 이어져 금강계단 앞에서 인사를 올린 뒤, 수천 명의 인원이 행렬을 이루어 동참 대중이 법성게와 장엄염불을 염송하며 소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어 소대에서 위패와 장엄물을 태우며 회향게송을 끝으로 화엄산림법회를 회향하였다.한편, 통도사에서는 화엄산림법회 기간 동안 토요일마다 저녁예불이 끝난 뒤 법주스님을 모시고 금강경 독송과 법성게(法性偈)를 하고 있다. 이 의식은 ‘법성게’로 통칭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며 슬픔에서 희망으로 안내하는 천도의식이다. ‘법성게를 한다’는 것은 의상대사(義相大師)가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210자로 축약하여 도형화한 법계도(法界圖)를 돌며 법성게를 염송한다는 뜻이며, 2015년의 법성게는 다섯 차례 설행되었다. 이때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은 긴 광목 끈을 연결하여 함께 잡고 법성게 독송과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며 법당 전체를 돌게 된다. 초기에는 아미타불과 위패를 모신 반야용선이 행렬의 선두를 이루어 법당을 돌았으나 지금은 천장에 반야용선을 매달아놓고 있다. 서로 연결된 끈은 일체 중생이 연기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어 고해의 바다를 반야용선을 타고 함께 건너가자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아울러 중앙에서는 바라춤ㆍ나비춤 등으로 작법을 하고, 장엄염불을 4ㆍ4조의 회심곡(回心曲ㆍ悔心曲)으로 염송하여 통도사 화엄산림만의 독특한 의식으로 설행되고 있다. 2시간 정도에 걸쳐 행하는 이 법성게는 화엄산림에 동참하는 불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마련한 이 기도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화엄산림에 동참하는 불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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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발우공양
발우공양은 밥 먹는 일을 수행의 일환으로 여겨 일정한 법식에 따라 발우에 담아먹는 승가(僧家)의 전통 식사법이다. 발우를 내리고 펼 때부터 음식을 분배하여 공양한 뒤 발우를 깨끗이 비우기까지, 각 단계마다 게송을 외면서 공양의 과정 하나하나를 수행정진의 과정으로 여긴다. 따라서 먹는 일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생명과 생태환경을 중시하고, 평등한 식사법을 실천할 수 있어 출가수행자들만이 아니라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가치로 재조명되고 있다. 현재 한국사찰에서 전통 발우공양의식을 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일상적으로는 상공양을 하더라도 많은 대중이 수행ㆍ정진할 때는 발우공양을 하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안거 중이라 하더라도 점차 간편한 상공양으로 대체해가고 있다. 통도사에서도 안거 중 조공(朝供)에 발우공양을 하고 있으나 사중행사가 많아 행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2015년 동안거 기간의 경우를 보면 음력 11월 한 달 동안 화엄산림법회를 하기 때문에 열흘간만 발우공양을 하였다. 발우공양은 전통사찰에서 예부터 엄숙히 시행돼온 대중 식사의식의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다. 대방 선반 위에 발우가 정연하게 얹혀 있는 정경은 숙연한 분위기와 함께 수행가풍을 느끼게 한다. 선반의 발우를 내리고 좌차(座次)대로 앉아 발우를 펴고 죽비에 맞춰 공양을 행하는 의식은 단순한 식사를 위한 것만이 아닌 수행의 한 법도이다. 시절이 변하여 편의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형식이 바뀌면 내용과 정신도 바뀌기 쉬우므로 전통의식의 단절에 대한 우려가 크다.스님들의 발우공양이 활발히 전승되지 않는 데 비해, 수련회나 템플스테이 등에서 행하는 재가자들의 발우공양은 오히려 활성화되어 있다. 일반인이 사찰에서 공양할 때는 출가자의 법식대로 하기 힘들기 때문에 게송을 생략하고 간편하게 행하는 방법을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가자의 발우공양 또한 승려들의 대중공양 법식을 토대로 한 것이기에 기본적인 절차와 내용은 동일하다. 근래 현대인들은 수련회나 템플스테이 등으로 사찰을 찾아 기도정진하면서 발우공양에 깊이 매료되고, 외국인들 또한 한국의 발우공양 체험을 즐겨한다.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낯설고 까다로운 식사방식인 발우공양이 왜 현대인들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일까. 그것은 기름진 음식이 넘쳐나고 한 끼 밥상의 소중함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교와 식탐이 난무하는 식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먹는 일에 집중하는 특별한 시간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불교가 지닌 미덕이 집약되어 있는 발우공양의 정신과 가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발우공양은 음식과 밥 먹는 일에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발우공양은 생명과 생태환경을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 셋째, 독상과 겸상의 미덕을 갖추면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양한다. 현대인에게 밥을 먹는다는 일은 곧 허기를 채우는 것, 맛을 즐기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 교감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 발우공양은 천천히 그리고 집중하여 ‘밥’에 대해, ‘밥을 먹는 일’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러한 명제를 각자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공양의 의미를 곰곰이 새기면서 여러 단계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식사가 시작되며, 밥을 먹는 과정도 자기를 관찰하고 함께 어우러져 먹는 일 전체를 관조해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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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도량석·조석예불
도량석은 한국불교 사찰에서 새벽 세 시에 대웅전 앞에서 시작해 목탁을 치며 게송 등을 염송하며 도량을 돌며 사찰의 대중과 제신에게 새벽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고, 조석예불은 아침저녁으로 일체의 불보살과 각 전각에 모신 분에게 인사드리는 의식이다. 도량석은 여느 북교국가에서 볼 수 없는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사찰의 전 대중이 함께 예불을 올리며 공동체의식을 고양하고 가일층 수행을 다짐하는 대표적인 일상의례라고 하겠다.■ 도량석여느 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통도사에서도 수행자의 하루는 새벽 3시의 도량석(道場釋)으로부터 시작된다. 목탁을 치며 도량을 돎으로써 어둠을 풀어 사찰의 대중과 천지만물에 새벽이 되었음을 알리고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의식이다. 통도사에서는 학인스님이 한 철씩 돌아가면서 도량석의 소임을 맡고 있다. 도량석을 집전하는 학인스님은 2시 50분경 먼저 금강계단의 정문을 열쇠로 풀고 참배를 하고나서 대웅전 앞에서 합장 반배한 다음, 3시가 되면 목탁을 울리기 시작한다. 어둠을 서서히 깨우기 위해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시작하여 천천히 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이렇게 올리고 내리기를 세 차례 반복한 다음 경내로 발걸음을 옮긴다. 목탁과 함께 법성게(法性偈)를 염송하며 도량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스님들의 거처마다 불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한다. 학인스님은 대웅전에서 중로전 구역으로 이동하여 불이문을 거쳐 종각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극락전 앞으로 돌아 대웅전 앞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선다.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리고 뒤로 돌아서서 반대편을 향해 다시 처음처럼 목탁을 세 차례 올리고 내림으로써 도량석의 소임을 마치게 된다. 처음의 목탁이 부처님을 향해 고하는 것이라면, 대웅전을 등지고 울리는 목탁은 대중을 향한 의미이다. 이렇게 도량석을 마치는 데까지 15분 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도량석이 끝나기 전에 여기저기 처소에서 스님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불전사물(佛殿四物)의 소임을 맡은 4인의 스님이 줄을 지어 범종각으로 향하고, 아침예불을 위해 일찌감치 설법전(說法殿)으로 향하는 스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도량석을 기점으로 한편에서는 불전사물을 울리고, 한편에서는 아침예불 준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도량석을 마치면서 대웅전의 정문이 열리고 하나둘 부지런한 신도들도 사찰을 찾는다.통도사 범종각은 이층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에는 2기의 범종(梵鐘), 위층에는 법고(法鼓)ㆍ목어(木魚)ㆍ운판(雲板) 등 사물이 있다. 사물을 다룰 스님들이 범종각으로 들어서서 먼저 근래 조성한 신종(新鍾)을 작게 울리며 종송(鐘誦)을 염송한다. 이어서 예경문과 파지옥게로 알려진 화엄경 제일게, 파지옥진언, 장엄염불,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여 어둠이 짙은 고요한 산사에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퍼진다. 염송을 마치면 3시 30분경 3인의 스님이 범종각의 이층으로 올라가 각각 자리를 잡고, 운판→ 목어→ 법고의 순으로 사물을 울린다. 마지막으로 3시 35분경이면 아래층의 스님이 17세기에 조성된 대종(大鍾)을 타종하기 시작하여 총 28추를 울리게 된다. 도량석의 목탁소리로 세상에 다시 날이 밝았음을 알린 다음, 이어 범종각의 사물을 울려 세상의 모든 존재를 어리석음에서 일깨우며 구제하는 범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조석예불통도사의 조석예불은 3시 50분경에 시작된다. 총무스님이 “새벽예불은 불전사물부터 시작되므로 3시 30부터 시작”이라고 하였듯이 불전사물을 울리면서 아침예불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통도사는 총림이기에 아침예불이 세 곳으로 나누어 거행된다. 사중스님들과 강원스님들은 설법전에서 아침예불을 올리고, 선원과 율원에서는 각각의 법당에서 아침예불을 올린다. 여기서는 대중들에게 개방하는 설법전의 아침예불을 살펴본다. 설법전의 아침예불은 대개 60인 내외로 진행된다. 법당에 대중스님들이 모이고, 불전사물의 범종소리가 끝나가면서 종두스님이 법당 안의 소종을 울린다. 작은 소리로 시작하여 점차 높은 소리로 오르내리기를 3회 정도 반복한 다음, 목탁을 울림과 동시에 모두 기립하였다.먼저 노전스님이 차를 올리는 다게(茶偈)를 염송하고, 모든 대중이 삼배를 올린다. 이어 본격적인 예참의례가 시작되어 한국불교에서 아침저녁 예불로 올리는 칠정례(七頂禮)를 다함께 염송하였다. 일반적으로 칠정례의 예경대상은 석가모니불, 불타야중, 달마야중, 문수보살 등 4대보살, 영산당시 아라한중, 전법의 역대조사와 종사, 승가야중이다. 그런데 통도사에서는 불보로 석가모니불와 함께 아미타불, 미륵존불, 영축산중금강계단 정골사리자비보탑을 더하고, 승보에 창건조사인 자장율사를 더한 11정례로 봉행되고 있다. 다음은 노전스님이 행선축원을 고한다. 행선축원(行禪祝願)은 선방축원이라고 알려졌는데, 모든 중생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중생교화를 위해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수행자의 서원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기원과 다짐의 축원이 끝나면 반야심경을 염송하고, 모든 대중이 삼배를 올린다. 이어 송주(誦呪)로 천수경을 염송한다. 한국불교에서는 일찍부터 아침예불 시 천수경을 송주하고 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함으로써 소원을 이루거나 업장을 참회하고 정화하는 의식이다. 천수경으로 송주를 마친 대중은 입정(入定)에 들게 된다. 소임스님의 죽비를 세 번 치는 소리를 신호로 선정에 들어 일체의 생각을 멈추고 나와 법의 실상을 관하는 것이다. 죽비를 세 번 치면서 아침예불을 마치고 대중스님들은 상단에 예를 올린 다음 퇴장한다. 이렇게 통도사의 아침예불은 ‘다게-칠정례-행선축원-반야심경-송주-입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30분〜35분 동안 이어진다. 설법전의 아침예불을 마치고나면, 강원스님들이 각자 맡은 전각으로 가서 예불을 올린다. 먼저 청수를 올리고 삼정례의 예경과 기도로써 통도사의 모든 법당마다 아침 문안인사를 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