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고려국속리산법주사자정국존비(高麗國俗離山法住寺慈淨國尊碑)
- 등록일
- 2015.07.13
- 작성자
- 관리자
분류 | 금석문/ 고승 |
---|---|
시대 | 고려 1342년(충헌왕 3) |
수량/재질 | 1기/ 돌 |
크기 | 214×107×23㎝ |
찬자 | 이숙기(李叔琪) |
지정현황 | 충북유형문화재 제79호 |
법주사에 있는 자정국존 미수(慈淨國尊 彌授, 1240~1327)의 비문이다. 법주사 동편의 자연 암반을 네모 낳게 파들어 가서 그 안에 비석을 끼워 넣었는데, 비의 왼쪽 하단은 떨어져 나갔다. 이 비문에서 ‘법주사’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보인다. 자정국존은 1240년에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여 19세에 승과에 급제하였고, 29세에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지위에 올라 주로 유식(唯識)을 강의하였다. 충선왕(1308~1313)은 대사를 극진히 예우하여 고려 법상종의 우두머리인 승통(僧統)으로 임명하였다. 국녕사·웅신사·장의사·법주사·중흥사·유가사·동화사 등 여러 사찰에 주석하였는데, 충숙왕 11년(1324)에 대구 동화사에 머무는 동안 승려로서는 최고의 지위인 국존(國尊)에 책봉되었다. 경론에 대한 주해를 찬술한 것이 92권이나 되며, 충숙왕 2년(1325)에는 참회부(懺悔府)를 설립하여 승정(僧政)을 담당하고 오교(五敎)와 이종(二宗)을 관리하였다. 말년에는 법주사에 머물다 1324년 12월 1일 신시(申時, 오후 3~5시) 무렵에 앉아서 입적하니, 세수 88세, 법랍 75세였다. 법주사 서북쪽 산등성이에서 다비하고 산호전 동쪽 모퉁이에 탑을 세웠다. 문인 314인이 스님의 행장자료를 모아 임금에게 올리고 행적비를 세울 수 있도록 간청하여, 1342년에 이숙기(李叔琪)가 왕명을 받들어 이 비문을 지었다. |
- 다음글
- 벽암대사비(碧巖大師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