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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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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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창건주에 대한 내용은 기록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양법당중수기(兩法堂重修記)」의 내용에는 봉정사의 창건주가
의상대사(義湘大師)라 전하고, 극락전의 상량문에는 능인대사(能仁大師)가 창건주라고 적혀있다.
이 두 기록은 조선 중기에 작성된 것으로 절의 역사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서이며, 이러한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각색되어 창건설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능인대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이고, 『삼국유사(三國遺事)』등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귀국 후 처음으로 창건한 절이 부석사라고 하는데 봉정사가 세워진 672년은 부석사 보다 4년 앞선 시기이므로 봉정사의 창건주는 의상 대사보다는 능인대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봉정사 극락전 편액
-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창건주에 대한 내용은 기록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양법당중수기(兩法堂重修記)」의 내용에는 봉정사의 창건주가
의상대사(義湘大師)라 전하고, 극락전의 상량문에는 능인대사(能仁大師)가 창건주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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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관세음보살좌상 - 문화재청
- 창건 이후 절의 역사는 정확히 전해지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전각 등으로 볼
때,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높은 사격을 지니고 법등이 지속되었음이 분명하다. 고려시대의 유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목조관세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과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들 수 있다.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은 사찰에 전하는
「대웅전관음개금현판(大雄殿觀音槪金懸板)」과 1753년에 쓰여진 「중수원문(重修願文)」을 통하여 1199년(고려
신종 2)에 처음 조성되어 1363~64년 사이와 1751~53년 사이에 중수된 상임을 알 수 있다.
양식적으로도 이 관음보살상은 중국 남송대의 불상이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 된다. 따라서 이 상은〈대웅전관음중수현판기〉에
기록된 대로 승안(承安) 4년, 즉 1199년 무렵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극락전의 경우 1972년 중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고려 후기인 1363년(공민왕 12) 3월 전각의 지붕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극락전은 적어도 그보다는 앞선 시기인 고려 중기의 건물로 생각된다.
봉정사는 임진왜란 때도 화를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최근까지도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져 본래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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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연대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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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년 |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대덕이 창건 |
1199년 | 목조관세음보살좌상 조성 |
1363년 | 극략전의 옥개부를 중수(1972년 극락전 해체·복원 시 상량문 발견, 극락전의 건립연대는 적어도 1200년대 전후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인정) |
1516년 | 퇴계 이황이 사촌동생 이수금과 함께 절에 머물며 공부함, 일주문 아래 계곡에 있는 명옥대는 본래 낙수대 였는데 이 무렵부터 이황이 고쳐 부른 이름임 |
1616년 | 고금당율 고쳐지었고, 1625년 3월에는 용수사의 전 주지 축담 스님이 퇴락한 대장전율 중수 |
1712년 | 대웅전의 후불도률 조성 |
1809년 | 승려 대영, 재익, 지원, 서생 등이 힘을 모아 극락전과 대웅전을 중수 |
1863년 | 등촉계의 시주금으로 전각 일부를 수선 |
1882년 | 현판을 고쳐 칠합함 |
1969년 | 고금당을 해체·복원 |
1972~1975년 | 극락전을 해체·중수 |
1999년 | 영국 여왕 엘려자베스 2세가 방문 |
2000년 |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 과정에서 상량문 발견,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 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