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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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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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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의 가람배치
봉정사 가람배치 극락전 대웅전 화엄강당 만세루 무량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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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36동 외 3개의 암자로 구성되어 있다.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능인대덕이 창건하였으며 이 절에 의상이 화엄강당을 지어 제자들에게 법을 전했다고 한다. 이후 1363년(고려 공민왕 12)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봉정사의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유산으로 꼽힌다. 극락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 등의 건축물이 잘 남아있으며 대웅전과 마당, 그리고 만세루를 넘어 자연으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빼어나다.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유명하며, 현재 국보 제15호로 지정되어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다. 건물의 정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내부의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양식적으로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순한 짜임새, 내부 가구의 고격(古格) 등이 특징이다. 또한 부재 하나하나가 모두 과학적이면서 미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 건물의 연혁을 적은 「상량문」 등이 발견되었다. 즉 건립 후 첫 중수는 1363년으로서 적어도 이때보다 앞선 고려 중기에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목조 건축물을 한번 세우면 다시 중수하기까지의 기간이 대체로 150년에서 200년 정도라고 볼 때 극락전의 경우 1200년 경 혹은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신축하였을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다. 건물의 주두(柱頭)와 소로, 첨자 등의 각 부재에서는 이 보다 앞선 통일신라의 양식이 발견되기도 한다. 1625년에 다시 중수를 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대장전(大藏殿)이라고 적고 있어 이름으로 보아 경전 판목을 보관하는 건물로 용도 변경이 있었던 것 같다.

대웅전(大雄殿)

봉정사 대웅전

국보 제311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절의 주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어칸의 창문이나 벽체 등 일부에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단청은 창건시의 모습 그대로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회화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1962년 해체·수리하면서 1625년과 1809년에 각각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건물이 조성된 시기를 조선초기로 추정한다. 양식적으로도 전형적인 다포 양식 건물이다.

대웅전 건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천장이다. 삼존상의 윗부분 천장은 다른 부분보다 깊게 파고, 작은 공포로 굽을 나타냈다. 이러한 모습은 궁궐건축의 일반적인 모습과 동일하다. 즉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국왕의 지존함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불법의 세계에서도 석가모니불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이러한 구조를 나타냈던 것이다.

내부에는 후불벽을 마련하고 그 앞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존자·아난존자상을 좌우로 모셨다. 삼존상 뒤에는 영산회상도가 있는데 최근 이 불화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벽화가 발견되었다. 가로 4m가 넘는 후불벽에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관무량수경을 설법하는 장엄한 광경을 묘사하였다. 화폭의 외곽에 테두리를 둘렀고, 당초문과 화려한 모란꽃 문양 등에서 고려시대의 변상도와 유사한 양식을 지녔다. 조선초기 대웅전의 신축과 함께 조성하여 1712년(숙종 38) 후불도 조성할 때까지 신앙적 기능을 이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화엄강당(華嚴講堂)

봉정사 화엄강당

화엄강당은 대웅전 왼쪽에 동향한 건물로, 그 뒷면은 극락전 앞뜰이 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풍벽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 측면에서 보면 가구구조를 볼 수 있다.

강당이라는 건물은 이름 그대로 화엄사상을 강설하던 곳이었다.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므로 바로 옆의 대웅전보다 낮게 세워 기둥은 짧고 지붕은 무거워 보인다. 이러한 시각적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공포의 크기를 보통 이상으로 크게 잡아서 건물의 균형을 살렸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지만 첨차나 쇠서들의 형태에서는 원래의 특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 박공머리에 나와 있는 도리 밑을 받친 첨차들은 전부 다포식의 첨차들이다.

공포와 공포 사이의 포벽에는 화반 등이 없이 벽만 쳐놓았는데, 이 벽면에서 밖으로 외목도리(外目道里)에 이르는 사이에 판자를 대어 윗부분을 가리고 있다. 건물 측면에는 중앙에 모기둥 1개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으며, 이 대들보와 그 위의 마루보 사이에 살창을 두어 환기와 채광에 주의를 기울였다.

건물 내부는 남쪽 2칸이 부엌, 북쪽 4칸이 온돌방으로 되어있으나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현재의 온돌방 뒤쪽으로 4칸의 마루가 깔려 있으며 부엌이 지금보다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평면 구성이 언제 오늘날처럼 바뀌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며 1930년대 이후로만 짐작될 뿐이다. 보물 제448호로 지정되어있다.

『양법당중수기』등의 기록에 따르면 1625년 극락전과 대웅전을 중수할 때 이 건물도 함께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금당(古今堂)

봉정사 고금당

고금당은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었으며, 극락전 앞뜰에 동향하고 있는 소규모의 건물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이지만 북쪽 측면은 후대에 팔작지붕으로 개조하였다. 남쪽은 지붕을 연장하고 칸을 막아서 부엌을 달았으며, 내부는 온돌을 놓아 방사로 사용하였다.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고 벽간마다 띠살문을 달아 놓았지만 원래의 문짝들이 아니다.

본래 불상을 봉안한 전각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1969년 해체·복원 공사를 하면서 1616년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복원 전에는 지붕의 모양도 달랐고 방 앞쪽에 쪽마루가 있었으며 칸마다 외짝문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면에 2짝의 여닫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아 놓았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 계통이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의 양식은 이미 조선초기의 특색을 잃고 변형되었다. 비록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기법을 조화롭게 사용한 건축물로 주목받는다.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만세루는 대웅전과 마주하는 건물로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이층 누각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측면에 풍판을 달아 가구의 노출을 방지하고 비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였다.

만세루는 일층인 아랫부분은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우하주는 누상주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보이며 사찰의 중정으로 오르는 통로의 구실을 한다. 만세루는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으며 법고와 목어 판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로서의 기능을 한다.

누에는 '덕휘루(德輝樓)'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어 이름이 덕휘루였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 만세루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1680년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된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현재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되어있다.

무량해회

봉정사 무량해회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집에 전면과 남쪽에 마루를 놓고 양쪽의 중앙에 칸벽을 설치하여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트인 ㅁ자형' 건물로 요사로 쓰이고 있다. 요사란 절에서 스님들이나 신도들이 거처하는 집을 말한다. 불사를 관리하고 강당, 선당에서 수행하는 모든 수행자들의 의식주를 뒷받침해 주는 생활공간이며 휴식공간이다.

안마당을 둘러 싼 북쪽의 방사 모서리에 '염화실'이라 한 작은 편액이 붙어 있다. 2칸 방과 작은 대청 그리고 단칸방 둘이 꺾여 북동쪽을 막아섰고, 4칸의 넓은 부엌은 동남 모서리에, 돌출된 남쪽으로 3칸통의 큰 방을 만들어 대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정에 면한 본채는 겹처마와 익공이 가구된 비교적 높고 당당한 건물이나 ㄷ자의 후원 요사 부분은 홑집이다. 안마당을 향한 본채 뒷면 각방에는 띠살문 옆에 살대를 꽂은 광창이 설치되어 내정의 분위기를 아담하게 꾸며준다.